
제 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군대를 시찰하는 베니토 무솔리 1930년대 초반, 제1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독일은 다시 전쟁의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합니다.바로 히틀러 정권 하에서 진행된 재무장 정책과 라인란트 재점령입니다. 🛠️ 전쟁을 준비하는 나라 – 재무장의 시작1933년, 히틀러가 총리에 오른 이후 독일은 빠르게 무장해제 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이는 명백한 베르사유 조약 위반이었지만, 나치 정권은 이를 *"독일의 자위권 회복"*이라 주장했습니다.1935년: 징병제 부활 선언같은 해: 공군 창설 및 육군 확대 발표1936년: 무기 공장 대규모 확충, 국가 총동원령적 경제 정책 시행히틀러는 군대를 단순한 무력이 아니라, 독일인의 자존심을 되살리는 상징으로 이용했습니다.독일 국민들도 대공황의 실업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이를 받아들였고, 군비 확장은 곧 경제 회복의 명분이 되었습니다. 🚶 라인란트 재점령 – “우리가 먼저 움직인다”1936년 3월, 독일은 프랑스 국경과 맞닿은 라인란트(Rhineland) 지역에 군대를 투입합니다.이곳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과 로카르노 조약에 따라 비무장지대로 설정된 지역이었죠.하지만 히틀러는 프랑스와 영국이 내전을 겪고 있는 스페인과 국제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틈을 타 강수를 둡니다.이 사건은 단순한 영토 회복이 아닌, 국제질서를 깨뜨리는 첫 도발이었습니다. 🧠 히틀러의 심리전히틀러는 당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랑스가 대응하면 우리는 물러난다.” 실제로 라인란트에 투입된 독일 병력은 소규모였으며,프랑스나 영국이 강경하게 나왔다면 히틀러의 첫 도박은 실패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하지만 양국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히틀러는 이를 국제사회의 무기력함으로 간주합니다.이후 그의 외교 전략은 더욱 과감하고 도발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베르사유 조약과 로카르노 조약 이후 독일의 영토/빨간 점선으로 그어진 부분이 잃은 영토와 라인란트 비무장지대다. 📉 국제사회의 침묵이 ...
원문링크 <제 2차세계대전 : 독일편 2화> - “전쟁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다” – 독일의 재무장과 라인란트 재점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