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8년 9월, 유럽은 또다시 한 걸음 전쟁에 가까워졌다.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경지대인 주데텐란트(Sudetenland)을 노렸고, 국제 사회는 그것을 막을 의지가 없었다.이번에도 그는 전쟁 대신 협상을 택했다. 그러나 그 협상은 평화를 보장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럽의 파국을 앞당기는 유예였을 뿐이었다. 🗺️ 배경: 주데텐란트란 어떤 곳인가?체코슬로바키아 서부 국경지대, 약 300만 명의 독일계 주민이 거주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체, 주데텐란트 지역은 체코슬로바키아에 포함히틀러는 이 지역의 독일계 주민이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독일 편입을 요구동시에 나치 지지 단체와 친독 선동이 체코 내부에서 확산📍 주데텐란트은 단순한 영토 문제가 아니었다. 체코의 핵심 군사방어선이 밀집해 있었고,여기를 잃는 순간 체코슬로바키아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다. 아돌프 히틀러의 친필이 담긴 서약서를 가지고 귀환한 네빌 체임벌린 🧨 위기 고조: 외교의 파열음1938년 여름, 주데텐란트 독일계 주민들과 체코 정부 사이의 갈등은 폭력 사태로 번졌다.히틀러는 독일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사 개입을 언급했고, 체코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프랑스와 영국은 체코의 군사동맹국이었지만,양국은 “또 다른 전쟁”을 원치 않았다.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은 사태 해결을 위해 직접 베를린행 비행기에 올랐고,결국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 4개국 정상 회담이 뮌헨에서 열리게 된다. 📃 1938년 9월 30일, 뮌헨 협정체코슬로바키아 대표는 초대받지 않았다.4개국은 수데티 지역을 독일에 양도하는 협정에 서명히틀러는 “더 이상의 영토 요구는 없다”고 약속귀국한 체임벌린은 "우리 시대의 평화를 얻었다"고 선언하지만 그 평화는 허상이었다.히틀러는 단 한 번도 주데텐란트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 체코의 붕괴1939년 3월, 독일군은 아무런 명분 없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로 진격한다.수데티은 시작일 뿐, 체코 전역이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독일계 주민 보호"라는 명분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히틀러는 유럽 질서 전체를 뒤흔드는 정면 침공을 시작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