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 5월 말, 프랑스 북부 해안도시 덩케르크(Dunkirk). 유럽의 운명이 걸린 전장에서, 수십만의 연합군 병력이 영국 해협을 건너기 위해 바다로 몰려들었다. 이 철수작전은 단순한 후퇴가 아닌, ‘패배 속의 기적’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향후 판도를 바꾸는 분기점이었다. 해안가에서 배를 기다리는 연합군 덩케르크 이전의 상황: 프랑스 붕괴의 서막7화에서 다뤘듯, 독일군은 마지노선을 우회해 벨기에와 아르덴 숲을 통해 전격적으로 진군했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은 단 2주 만에 프랑스 북부를 휩쓸며 연합군 주력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영국 원정군(BEF), 프랑스 제1군, 벨기에군 등 40만 명 이상의 병력이 덩케르크 포위망 안에 갇히게 되었다.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 기갑부대의 속도와 전략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덩케르크 철수작전 “다이나모(Dynamo)”: 절망에서의 시작5월 26일, 영국은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을 개시한다. 목표는 단 하나 – 최대한 많은 병력을 바다 건너 영국 본토로 탈출시키는 것.영국 해군 소속 군함뿐 아니라, 민간 선박 수백 척도 동원되어 병사들을 수송.민간인이 조종하는 소형 어선, 유람선, 낚싯배, 심지어 요트까지 덩케르크 해안으로 향했다.작전은 6월 4일까지 이어졌으며, 총 33만 8천여 명이 구조되는 데 성공했다. “전쟁은 전투로만 치르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바다 위에서 건져 올린 용기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히틀러의 ‘멈춤 명령’: 미스터리와 논란덩케르크 철수의 성공은 독일군의 ‘의외의 멈춤’ 덕분이기도 했다.5월 24일, 히틀러는 돌연 기갑부대의 진격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린다.이는 전차를 아끼고, 공군이 철수를 저지하도록 하려는 전략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수십만 명의 연합군 철수를 허용하는 결과를 낳았다.훗날 독일 장성들은 이를 두고 “히틀러의 가장 큰 실책 중 하나”라고 회고했다. 프랑스의 패전: 1940년 6월, 파리 함락덩케르크에서 병력은 철수했지만, 프랑스 자체는 무너지고 있었다.6월 10일, 이탈리아가 독일 편에 가세해 남부에서 침공.6월 14일, 독일군이 파리 입성.6월 22일, 프랑스는 정식 항복. 전쟁 시작 후 불과 6주 만의 붕괴였다.이후 프랑스는 비시 정부와 자유 프랑스 세력으로 분열되며, 유럽은 본격적인 독일 지배 체제로 들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