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강력한 연설과 결단력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하지만 그는 동시에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식민지 억압을 정당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오늘은 처칠의 양면성을 함께 살펴보며,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들여다봅니다. 🧒 출생과 초기 경력출생: 1874년, 영국 귀족 가문 출신군 복무: 인도, 수단, 남아공 등 식민지 전쟁에 참전정계 입문: 보수당 → 자유당 → 보수당으로 전향해군장관으로 재직하며 해군 개혁과 갈리폴리 작전 주도📌 초기부터 영국 제국의 이익과 권위를 중시하는 태도가 뚜렷했습니다. ⚔️ 제2차 세계대전의 상징1940년 총리 취임, “피, 땀, 눈물” 연설로 국민 단결루스벨트, 스탈린과 연합 전선 형성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전략적 기반 마련영국을 나치 독일로부터 지켜낸 리더로 국제적 명성 확보📌 전쟁 시기에는 대중을 결집시키는 영웅적 이미지가 부각되었습니다. 🌒 그림자 ①: 제국주의자 처칠🔹 인도에 대한 억압1943년 벵골 대기근 당시 식량 수출을 강행,➜ 약 300만 명의 인도인이 아사,➜ “탓할 것은 인도인의 다산(多産)”이라는 발언으로 비판 받음🔹 팔레스타인, 케냐, 아프리카 식민지 정책케냐 마우마우 항쟁에 대해 강경 진압 지지전반적으로 “영국 제국은 문명을 전파한다”는 식민주의 사고📌 제국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식민지 주민의 인권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 그림자 ②: 파시즘에 대한 복잡한 태도1920~30년대, 이탈리아 무솔리니를 공개적으로 칭찬➜ “파시즘은 문명의 방패이며 무정부주의의 해독제를 제공한다.”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군부에 어느 정도 호의적인 시각전쟁 전까지는 반공주의가 반파시즘보다 우선이었다는 지적📌 전쟁 시기의 ‘반나치 영웅’ 이미지와는 다른, 복잡하고 기회주의적인 정치 행보도 존재합니다. 🌒 그림자 ③: 국내 노동자 탄압광부 파업 무력 진압 지시 (1926년 총파업)보수주의 강경 노선을 고수하며, 노동계와 극심한 대립복지 정책 확대에도 부정적이며,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건 자유의 위협”이라 주장📌 노동자 계급에 대한 인식이 엘리트주의적으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