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 상공에 조색기들이 떠 있다. 1940년 6월,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면서 서유럽 전역은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다음 목표는 단 하나. 영국 본토였습니다. 그러나 도버 해협을 건너는 ‘바다의 전쟁’은 그리 만만치 않았습니다. 히틀러는 지상 침공 대신 공중전으로 영국을 굴복시키려 했습니다. 이 전투는 오늘날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으로 기억되며, 그 중심에는 독일의 치명적인 공습 작전, ‘런던 대공습(The Blitz)’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작전: 바다사자 작전에서 공중전으로히틀러는 애초에 영국 본토 침공을 위한 지상군 작전인 ‘바다사자 작전(Operation Sea Lion)’ 을 구상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해군과 공군이 건재한 상태에서 상륙 작전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이에 따라 히틀러는 먼저 영국 공군(RAF)을 파괴하고, 공포심을 조장해 영국 정부를 무릎 꿇리기 위한 전략적 공습에 돌입합니다. 런던 대공습의 시작1940년 9월 7일부터 본격적인 런던 공습이 시작됩니다. 독일 루프트바페(Luftwaffe)는 약 76일간 밤낮으로 런던을 폭격했고, 이는 1941년 5월까지 총 57회에 걸쳐 지속됩니다.주요 타격 지역: 민가, 철도, 항구, 병원, 학교 등사망자: 약 4만여 명부상자: 약 13만 명주거 파괴: 수십만 채가 파괴되거나 손상됨영국인들은 밤마다 지하철역에 모여 대피했고, 이는 전쟁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남았습니다. 처칠과 국민의 저항 전시 지도자 윈스턴 처칠. "우리는 해변에서도 싸울 것이고,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 1940년 연설 중 당시 수상 윈스턴 처칠은 냉철한 판단과 단호한 어조로 국민들을 하나로 묶었습니다.그의 유명한 연설,“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We shall never surrender)”는영국인들에게 절망 속 희망이 되었습니다.영국의 공군 또한 열세 속에서도 독일군을 끈질기게 막아냈고, 레이더 기술을 적극 활용한 선제방어가 빛을 발했습니다. 독일의 전략 실패히틀러는 런던 공습으로 영국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오히려 영국의 결속만 강해졌습니다.공습의 결과: 민간인 피해는 컸지만, 전쟁 지휘 체계는 건재전술적 실패: RAF는 파괴되지 않았고, 영국의 방어 능력은 향상됨정치적 역효과: 미국의 여론이 영국에 유리하게 돌아섰으며, 렌드리스법 제정(1941년) 등 향후 지원의 계기가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