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연작소설은 아마 처음 읽어보는 것 같은데 하나의 이야기, 같은 캠퍼스 안 그림 속 화자만이 바뀌면서 이야기가 이물감 없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고, 읽는 내내 호기심과 몰입으로 가득 채워졌던 것 같다. 잔잔하지만 강하게 마치 빨려가듯 읽혀 느껴보지 못 한? 새로운 감정이 잇따른 책이었다. 1장을 다 읽은 뒤 2장의 첫 페이지를 읽고자 넘겼을 땐 당연히 2장은 1장과는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겠구나, 개별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절로 ‘와’ 소리가 나올 만큼 교묘하면서 천재 같은? 너무나도 절묘하게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3장 모두 주인공 ‘영혜’에 관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었다. 여기서 영혜의 이야기라 함은 어느 날 영혜는 기이한 꿈을 꾸게 되고,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면서 갑자기 냉동고에 있는 고기란 고기는 몽땅 버리며 ‘채식주의자’ 선언을 하고 만다. 이에 따라 가족들과 갈등을 빚게 되고 놀랍게도 이 모든 이야기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처음 1장은 영혜의 남편이 바라보는 영혜를 바탕으로 솔직하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자세히 아주 상세히 남편의 생각이 표현된다. 처음엔 정말 제목처럼 채식주의자를 선언하고, 잔잔하면서도 스산하게 절대 일반식을 하지 않는 다소 고집스러운 비건(?)의 일상을 그린 이야기인가 싶었다. 무슨,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조금은 위험한 말이지만 이럴 수가 있구나 싶기도 하고, 문득 영혜가 돌연 꿈을 꾼 뒤 채식주의자라고 선언한 것이 정녕 오직 ‘꿈’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3장까지 모두 읽고 난 뒤 처음 든 생각은 이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어쩌면 이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과 더불어 영혜는 가부장적이고 다소 폭력적인 집안에서 자라 (내가 보기엔) 딱히 사랑 없는 남편과 생활하면서 억압되어온, 자신의 본능적인 선택 하나 하지 못하고 살아온 환경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과 아버지, 그들의 세상 안에서 사는 것이 도무지 지쳤던 것. 그래서 초반에는 젠더와 관련한 소설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일련의 사건들 중 하나는 개를 오토바이에 묶어 몇 바퀴를 질질 끌고 가던 아버지와 그 개를 영혜 자신도 맛있게 먹은 장면. 또 영혜가 남편을 위한 요리를 하다가 실수로 들어간 칼조각에 남편이 내보인 폭력성 등 이러한 영혜가 가진 기억들로 미루어 보아 오직 그 ‘꿈’만이 채식주의자 선언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 2장은 진짜 더 충격적이고 더욱 혐오감? 기괴하다 못해 동떨어진 어느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만 같던 느낌을 주었다. 신선하게도 영혜의 형부 시점으로 어쩌면 그는 영혜와 가장 잘 맞았던? 영혜의 충격적인 사상과 가장 잘 부합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혜의 불가해한 상상, 자신은 동물(인간)이 아니라 식물이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싶은 안타까운 생각과 형부의 예술적? 열망이 만나(결국 넘지 말았어야 했을 선을 넘어버린..) 파국을 형성한다. 그리고 남편은 결국 정신병원에서 나온 영혜를 바로 매정하게 돌아서버렸다. 처음엔 나도 남편이 참 차갑고 비정해 보였으나 곰곰이 생각해 본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일반적인 반응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상식과 이해의 선으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잠깐이나마 영혜를 가장 행복하게? 편안하게 해준 형부.. 였다는 생각도 드네요..3장에서는 그 괴이한 형부의 아내이자 영혜의 친언니(K-장녀) 인혜의 시점으로 이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쓰면서 또 생각한 건데 영혜는 3장이라는 긴 서사의 주인공이면서 한 번도 주도적인 화자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얘기하지 못했다. 한 편으로는 영혜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쭉~ 진득하게 들어보고 싶지만 이렇게 묻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부디 영혜가 언젠가는 꼭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주고 영혜의 이야기를 주변 모두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에서 편안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솔직히 이 소설 속 가장 가슴 쓰린, 할 수만 있다면 제발 도움을 주고팠던 사람은 개인적으로 인혜라는 생각이 드는데 주변 이들이 보았을 때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고, 자신을 웃게 해주는(제발 웃으라며 노력해 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까지 있음에도 인혜는 그 아이를 두고 어둠 속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닥치는 대로 뛰쳐가버리기도 했던, 곪을 대로 곪아버린, 삶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인혜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측은한 감정이 들기도 했고, 가엾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든 세상과 타협하며 영혜의 곁에 마지막까지, 정말 끝까지 남아주었다. 나 몰라라 포기하고 돌아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시점에도 영혜를 위하던 그 고운 마음씨, 죄책감이었든 뭐든 어쨌든 난 너무, 너무나도 존경스러웠고 진짜 정말 꼭 만나게 된다면 바로 달려가서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고생했다고 정말 지금까지 아주 잘 살았다고 부단히 잘 살았다고 정말 모든 게 다 괜찮다고 너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OTT 영상에 흔히 나오는 적잖이 충격적이면서도 자극적인. 그런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유 모를 충격이 아직까지 내 몸 안에 자리하고 있다. 한 사람의 단편적인 인생 한 부분을 이렇게나 세세하게 표현하고 묘사할 수 있구나 그리고 그 표현력과 어휘 선택, 문장 완성력에 읽으면서도 몇 번이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한 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내 머릿속에 정신병원의 환경, 의사선생님의 태도, 영혜네 집, 형부의 작업실 등 모든 게 저절로 쉽게 그려졌다. 마치 내가 소설 속 인물의 머릿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지켜본 것처럼 그래서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노력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황급히 도망쳐 나와버린 것만 같은 느낌.대체 어느 누가 정상이고, 비정상적인지조차 헷갈렸다. 이 세상에 일반적인 것, 과연 정상적인 것은 무엇일까. 그 기준이 있기는 한 걸까. 암울하면서도 기이했던 작가 한강 님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에는 일말의 후회란 없지만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제 티 없이 밝고 다분히 희망적인, 그런 책을 읽고 싶어.. 현재로서는.. 채식주의자 저자 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