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건 장편소설, 급류

“사람을 구하는 건, 언제나 옳은 일이잖아.”“나는 네가 용서했으면 그걸로 다 됐어.”상처에 흠뻑 젖은 이들이 각자의 몸을 말리기까지,서로의 흉터를 감싸며 다시 무지개를 보기까지거센 물살 같은 시간 속에서 헤엄치는 법을 알아내는연약한 이들의 용감한 성장담, 단 하나의 사랑론소설 <급류>를 읽으면서 주목했던 대목은 두 가지다. 우선 도담의 ‘성장’이다. 도담의 성장은 극복의 과정과 사랑을 정의하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에 있다. 도담은 창석(도담의 아빠)의 얼룩덜룩한 화상 자국에 연고를 발라주며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정미(도담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이것이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물증은 없어도 심증만은 확실했던 창석의 외도를 직감하며 도담은 가족을 속이고 상처를 입히는 게 사랑이라면 온 힘을 다해 찌그러트리고 싶다며 그의 사랑을 증오했다. 결국 그 사랑은 급류가 되어 잠잠히 흐르던 그들의 삶을 일순간 흩트려 놓고 말았다. 은인에서 인연이 되고 연인이 되었던 도담과 해솔은 악연이 되었다. 가장 의지하고 사랑했던 다이빙 버디, 창석은 거대한 물음표를 남긴 채 도담의 곁을 떠났다.🔖 도담은 양팔을 꽉 껴안았다. 산다는 게 겁이 났다. 자신이 없었다. “다 지나갈 거야. 괜찮아질 거야. 미래만 생각하자. 미래만.” 컴컴한 어둠이 내려앉은 언덕에서 도담은 혼자 중얼거렸다. 크게 심호흡을 하는데 호흡이 떨렸다. 해솔은 이제 볼 수 없고, 불이 나서 소방차가 오더라도, 아빠는 오지 않을 것이다. - p. 88이후 도담은 사랑이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라 정의한다. 소통보단 침묵을 더 신뢰하게 되었고, 한없이 가볍고 외롭게 그녀의 일상들을 채워나갔다. 점점 의식을 놓아 버릴 기세로 술을 마시며 굴러떨어지는 기분에 의존했다. 반면 해솔은 술은 조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더욱더 가시 돋친 감옥에 욱여넣었다. 그들이 각자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방식이 달랐기에 추후 있을 그들의 만남 뒤 펼쳐지게 될 갈등을 넌지시 예감할 수 있었다. 해솔이 도담을 생각하는 독백은 설렘으로 간지럽히면서도 곧 안타까움에 잠기게 했다.🔖 그래도 해솔은 징그럽게 싸우면서도 매일 같이 있는 둘이 부러웠다. 도담과 티격태격하던 때가 그리웠다. 백 번 싸우면 도담에게 백 번 져줄 수 있는데..... - p.93🔖 해솔은 도담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도담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데 도담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랐다. 튼튼한 두 다리가 쓸모없게 느껴졌다. - p. 106🔖 밤을 꼴딱 새우고 아침이 되자 기다릴 수 없었다. 도담이 보고 싶었다. 당장 도담을 만나야 했다. 해솔은 걸음을 옮겼다. 튼튼한 다리로 도담을 향해 달려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모처럼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 p. 118🔖 늘 감정보다 이성적인 선택을 하며 엄격히 살아온 해솔에게 도담만은 유일한 예외였다. - p. 253이야기의 주 배경은 ‘여름’이지만 이들의 사랑은 뙤약볕에 반짝이는 여름바다보단 조금은 외롭고 소슬할지라도 그리운 마음이 일렁이는 겨울바다와 더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사랑의 모양은 우글쭈글한 하트의 모양일지라도 둔중한 울림과 커다란 힘을 가졌다. 평범한 사랑은 분명 아니었다. 읽는 내내 나도 그들처럼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두렵기도 했다. 분명 많이 아플 거 같아서.한 편의 영화 같았다. 진평 계곡에서 함께했던 장면들, 해솔과 도담의 첫 재회 장면, 호랑지빠귀라는 철새와 함께 한 모든 장면들,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정미와 도담의 대화, 승주와 선희에게 각자의 진심을 고하던 장면, 회복을 끝낸 그들이 너울대는 파도를 뚫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장면 등. 읽는 동안 머릿속 풍경은 그들과 함께하지만 끝내 목도하고 지켜보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펼쳐졌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감싸고 안아주던 그리고 서로를 할퀴고 상처를 안겨주던 곳곳의 조도와 온도, 조금 오버하면 바람의 세기까지도 상상했다. 그만큼 흥미진진했고 읽는데 많은 힘이 들지 않아 속독하기 좋았다. (독서 입문자라면 강력하게 추천!!) 알고 보니 작가님께서영화감독으로서의 활동까지 섭렵하셨던..!!🫢 하지만 초반 부의 스탠스가 너무 강력해서 상대적으로 뒤로 갈수록 힘이 서서히 빠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의 몰입도와 달리 후반 부는 예전에 유행하던 웹 소설, 웹툰을 보는 듯도 했다. 그들의 성장 과정을 한 편으론 두둔하지만 사랑이 더 주였기에 생겨난 아쉬움이 있다.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도담의 성장 모멘트🔖 “저, 승주 씨, 제가 함부로 말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