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단편소설, 장미와 나이프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복간된 작품인 <장미와 나이프>는 단편소설로, 총 5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앉은 자리에서 1-2편씩은 기본으로 뚝딱하고 읽을 정도로 흡입력이 상당했는데, 개인적으론 불륜과 더불어 도의적으로 해서는 안 될 사랑이 대부분 주를 이루어 중간중간 몰입감이 깨지기도 했다. 클리셰적인 부분도 한몫했고, 단편소설이다 보니 긴 흐름으로 가지 못해 막바지에 탐정과 그의 조수가 사건을 매조지하는 방식으로 끝나 아쉬움이 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초기 작품들이 복간된 만큼 ‘이게 추리소설의 정수다‘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원체 작품을 볼 때 떡밥 회수에 진심인 사람인지라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차근차근 주목하며 따라가면서, 별것 아닌 거 같은 한 마디와 표현, 설명들이 하나로 함축되어 농밀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수차례 느끼곤 4편부터는 점차 기대되기까지 했다. 이번엔 과연 어떤 여운을 남겨줄까.소설의 첫 포문을 열어주는 <위장의 밤>은 작중 비서 신이치의 캐릭터가 퍽 신선하게 다가왔다. 풀린 듯하였으나 풀리지 않은 이야기와 지나가는 인물이라 여겼던 사람이 사실은 큰 열쇠를 쥐고 있었던 사실까지. 공책에 메모까지 하면서 머리를 팽팽 돌리다 머리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은 아마 한동안 곱씹게 될 듯싶다. 다음 소설인 <덫의 내부>는 새벽에 읽다 문득 무서워서 3번 정도 주위를 헐레벌떡 둘러보았다. 나오는 인물들이 한정적이라 어느 정도 예상이 가긴 했지만, 항상 허를 찌르는 부분은 존재했기에 아찔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당신입니다.”라는 말을 보는 순간 몸이 살짝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세 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의뢰인의 딸>, 참 당연한 말이지만 제목만 보았을 때는 너무 모호해서 왜 이렇게 지었나 싶다가도 다 읽고 나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참 기똥차게 지었구나 싶다. 이 작품과 같은 경우엔 초반에 언니 교코가 묵직한 긴장감과 오싹함을 안겨주는데, 서늘하면서도 오리무중인 미스터리가 퍽 안달 나게 한다. 좁혀지는 듯하였으나 사실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던 것. 역시나 마지막은 둔중한 울림을 안겨준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여정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탐정 활용법>과 같은 경우엔 생각보다 고자극이라 놀랐는데, 이 책의 다섯 편의 이야기는 모두 부유층을 회원으로 하는 사설 ‘탐정 클럽’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그들에 대한 여러 가지 묘사가 나온다. 묘사만 봐도 비주얼이 꽤나 상당할 거 같아 드라마화해도 너무 재밌게 볼 거 같다는 생각도 했고, 여기서 그들의 매력이 더욱 치솟듯 올라가 비하인드로 뒤에서 치밀하게 조사하며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엔 살짝 드라마 마스크걸의 춘애와 미모 생각도 들고, 어쨌거나 권선징악으로 끝난 거 같고, “너희만 똑똑한 줄 알았지?” 하는 느낌도 들어서 개인적으로 매력적이었던 이야기.대망의 이 작품의 제목인 <장미와 나이프>도 개인적으로 뻔하다고 느껴지긴 했으나, 지켜줄 수 있는 이야기, 모르는 게 훨씬 나을 이야기를 수면 위로 올리며 아버지인 다이조에게 일순간 감정 몰입을 하고 있던 날 발견할 수 있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역시 유전자의 비밀만큼이나 맛있는 설정은 없다. 돈과 사랑이라는 욕망의 힘은 대체 사람들을 어디까지 추락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들. 사실 신간인 줄 알고 읽었는데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104권의 저서 중 14번째로 출간된 초기 단편 추리소설이라고 한다. 사실 어느 정도만 읽어도 옛이야기 같은 느낌이 확 오긴 한다. 예전(휴대폰이 없던 시절)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명탐정 코난을 연상케 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의 입문용 책으로 아주 안성맞춤이라고 말하고 싶다. 생각보다 가볍게 술술 읽혀 좋았고, 이를 계기로 추리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거 같다. 다음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추리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 강추🌹🔪 장미와 나이프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출판 반타 발매 202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