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나 소설, 내일의 엔딩
“숨 쉬고 살기 위해 필요한 건 다정함만은 아니었다.살아남는다는 건 징그러운 일인지도 몰랐고,그 징그러운 모습을 미워한다고 해서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p. 26"아아, 인간을 기어이 살아가게 하는 삶의 소중한 빛은언제나 멀고 희미한 곳에 있다!“- p. 98“괜찮아. 꿈을 통해 현실을 알았어.”- p. 124 상실에 관한, 애달프고 무서워 애써 외면하는, 우리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안락하고 익숙한 존재이기에 망각하고 만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그 모습으로 우리의 곁에 있을 수만은 없는 존재인 것을. 이 소설은 나에게 너의 소중한 이들을 어떻게 보내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다. 나의 영원한 보호자일 것만 같던 그를, 보호자로서 그의 마지막을 간병한다.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의 나를 위한 삶을 내어주어야 한다.읽기 전까진 안일하게도 당연한 일이라 치부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의 간병이니까. 그도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은 아닐뿐더러 날 키워주고 일평생 나만 바라봐 준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는 그리 쉽게 결정할 일도, 당연한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이 책의 작자, 김유나 작가님께선 이 뭐라 해명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들에 대해 농밀하면서도 그렇다고 ‘상실과 죽음‘에 대한 극명히 무거운 주제의식에 대해 어두운 분위기로만 끌고 나가지 않았다. 쉬이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을 공감하기 쉽게 서술해 줄 뿐. 아버지의 보호자가 된다는 상상은 순간일지라도 섬뜩하고 암담하기만 하다. 중환자실 실습을 하면서 아빠와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적지 않게 했다. 아빠는 아빠의 엄마를 끝까지 지켜보았다고 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다고. 그래도 한 편으론 아빠에겐 엄마도 있었고, 5명의 고모들이 함께해 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경은 그 긴 아버지의 투병생활을 홀로 견뎌야 했으니까. 자경은 아버지의 간병인이 되기 위해 회사에 사표까지 내고, 병원비를 수납하기 위해 대출을 받으며 생활고에 끌려다니게 된다.“살아본 결과 미래란 행복이 아니라 책임이었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숨 쉴 틈 없이 닥쳐오는 것이었다. - p.50”그때 자경은 삶이란 자유의지로 끌고 나아가는 거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삶이 자경을 끌고 갔다.“ - p.51죽는 것까지 돈이라니.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돈과 필연적으로 얽혀야 하며, 마침내 짓눌리게 하는 현실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간병은 누군가를 책임지고 돌봄과 동시에 돈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허나 자경은 자신을 잃어가는 복잡한 일상 속에서 끝내 빛을 찾아간다.홀로 이겨내는 삶, 혼자인 삶은 더 함께하고 사랑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점차 희미해지고 불투명해지는 삶은 분명 더 자신을 선명하고 명료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건 분명 눈부신 과정이었다. 상실 속에서 자경은 작은 불빛 속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나아간다."그래도 우리가 같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그런 선택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p. 135어쩔 수 없이 일어난 절망에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나의 빈약한 상상력으론 감히 공감할 수 없는 감정과 자본이 뒤따랐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끝까지 지키고 싶었기에.2부에서 보여준 자경의 꿈을 위한 발걸음은 나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안겨주었다. 그녀가 꿈꾸는 이상 내지 상상은 나까지 덩달아 설레게 했다. 무언가를 정말 만들어낼 거 같아서. 정말 이뤄낼 거 같아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과정은 그저 활기와 열정으로 가득해서 그 멋진 과정에 나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빛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불필요한 장면도 있고 해야 영화가 숨을 쉬지.”- p. 107"난 찍기 편한 영화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 불가능을 담는 감독이 되고 싶어. 나 믿고 촬영만 해줘. 나머진 내가 다 해.”- p. 111비록 세상은 그런 그녀의 기대에 전혀 부응해 주지 않았지만, 그녀의 도약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 과거의 자경은 알았을까. 먼 훗날 자신이 만들어낸 성공보단 실패에 가까운 한 영화가 먼 미래의 지난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줄 것이라는 사실을.모두가 출발점보단 도착점에 해상도를 높일 때다시 출발점으로 향할 용기도,삶에 성실하게 끌려다니는 삶 속에서다시 무언가를 끌어볼 용기도,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다시 누군가를 사랑해 볼 용기도.다 하나같이 아름답고 멋진 일이었다. 아빠의 감상은 지나친 낭만만은 아니었을지 몰랐다. 희망을 갖고 불빛에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 소녀의 마음은 가짜가 아니었으니까. 멀고 희미한 곳에서 반짝이는, 인간을 기어이 살아가게 하는 빛 또한 영화 속에 있었다. p. 132 잠든 자경의 머리 위로 뚫린 창밖에는 어둠뿐이었으나, 자경은 환한 대낮과 대낮보다 밝았던 어느 밤들을 지나는 중이었다. 너무 꼭 쥐어 시들어버린 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