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진진아, 미안해. 너보다 우리 자식들을 더 사랑해서...너한테 정말 미안해......”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그것이 인생이다...... p.22 마지막으로 한마디.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p. 296 안진진의 입장에서 본 인생의 깨달음은 이러했다.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은 결국 큰 나비효과로 번져여실히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과거의 나의 무수한 선택들의 결과인 셈이다.이 이야기는 안진진의 명랑하고도 발랄한 말투로 어딘가 모를 씁쓸함을 숨기지 못한 채 자신의 25년간의 인생을 상세히 서술해 나간다. 아무래도 1998년도에 출간한 소설 작품이기에 작중 ‘결혼’에 대한 의미가 시대상 우리에게 공감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나도 그랬고, 그걸 감안해서 안진진의 마음을 졸졸졸 따라갔다. 아무래도 또래의 나이다 보니 이 문장도 꽤나 잔상에 남았다. “이십 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p. 17) 인생의 부피란 표현에 유독 마음이 꽂혔다. 이십 대의 특권이라고도 불리는 방황 내지 방랑, 여러 실패를 거듭하고 도전과 경험을 일삼으며, 그 안에서 크든 작든 의미를 쟁취해 내는 것. 여기서 안진진은 자신의 삶의 부피를 늘려줄 만한 일로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다. 가장 가성비가 좋다고도 생각했다. 이런 표현도 나온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p. 15) 현대로 비추어보면 2025. ver 안진진은 여러 회사에 자기소개서와 입사 서류를 제출하며 전전긍긍 취준 시장에 발을 들였다거나 베이커리 카페 창업을 위해 베이킹 학원에 등록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진진은 어쨌거나 두 남자 사이에서 결혼 상대를 고민한다. 어찌 보면 신여성에 가깝다. 하지만 쉬이 말하는 어장으로 칭해 그녀의 태도를 비도덕적이라 분류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그녀의 묘사는 한 쪽으로 어느 정도 기울어져 보였기에 또, 그래서인지 더 설레고 더 로맨틱하게 느껴졌기에 ‘김장우‘라는 남자가 그녀의 인생의 부피를 늘려줄, 삶의 부피를 부풀게 해줄 남자이길 내심 바랐다. 더 확신했던 부분은 자신의 치부와 약점이 될 수 있는 ’진실’을 김장우에겐 털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면 반대로 또 하나의 남편 후보군, ’나영규‘에겐 탈탈탈 자신을 설명하고 진실을 털어놓았다는 거다. 사랑이란,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거니까.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p. 218) 이 부분에선 그야말로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했고, 야생화를 찍는단 핑계로 김장우와 안진진이 가을 여행에 갔을 때도 확신했다. 하지만 반전이라는 플롯의 장치를 놓치지 않아야 했다.작품이 비극일 때 우리는 더 그 작품에 여운이 남고 기억이 남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으로 ’나영규‘를 고른 안진진의 선택에 대해 거창하게 실망스럽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부지런히 안진진의 마음을 졸졸졸 따라갔다. 때는 안진진이 김장우와 가을 여행을 떠나 사랑이란 걸 깨달은 순간이다. 작중에선 안진진의 기분이 급격히 저조해졌고, 마음자리 어딘가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겨서 그 안으로 찬바람이 쉭쉭 드나들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나 역시 사랑은 계산적이지 않았으면, 손익을 따지지 않았으면 하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나영규라는 남자가 안진진의 환경에선 실로 더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김장우는 낭만파였고, 가난했다. 나영규는 딱 안진진의 이모부와 가까운, 현실파인데다 계획형에 통제적인 사람이었으나, 그만큼 여유로웠다. 잘은 모르겠지만 안진진은 자신처럼 돈에 쪼들리며 가난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남자 김장우에게 사랑에 빠진 것에 대해 도저히 참을 수 없음을 느낀 것이 아닐까. 연애가 아닌 결혼이니까. 이 시대상에선 이혼도 아마 흔치 않았을 것이고, 주변 시선도 그리 곱지 않았을 거 같다. 안진진이라면 생각보다 많이, 길게, 오래 상상했을 것이다. 자신의 결혼 생활, 즉 이 선택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펼쳐질 미래상에 대해.여행 중 안진진은 취하고 말았다. 필름이 끊겨 김장우에게 그만 “자신을 가두지 마라. 감옥처럼 굴지 말아라.”라며 김장우를 때리면서 술주정을 했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아빠가 엄마에게 잡채 접시를 던진 뒤 했던 말과 똑같다. 안진진은 자신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만 것이다. 추후 안진진은 김장우의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간다. 김장우의 형과 그의 아내. 단란하고 화목한 그야말로 이상적인 가족이 아닐 수 없었다. 서로를 위하고 자신보다 상대를 더 존중하고 사랑했다. 안진진은 그 모습을 지켜주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이 혹 망쳐버릴까 무서워서. 자신의 아버지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할까 두려웠기 때문에. 어쩌면 김장우가 변해버릴지도 모를 노릇이었기 때문에. 의외로 안진진은 자신의 아버지를 그다지 나쁘게 묘사하지 않았다. 그 부분이 가장 색다르게 다가왔는데, 자신의 아버지는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을 넘치도록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게 변해버린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안진진의 아빠도 김장우처럼 낭만파에 가까웠다. 어린아이에게 하는 말들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인데, 대사가 좀 길어서 간추리자면 슬픈...